장기 역사
HOME > 장기 소개 > 장기 역사장기의 기원
장기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고대 인도의 서북부(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에서
행해지던 ‘차투랑가’(chaturanga)로 보고 있다. ‘chaturanga’ 란 고대 인도어인 범어(梵語,
San skrit)로서 chatur는 넷(四, four), anga는 원(員, member)의 뜻인데, 4원(四員) 이란
군대의 구성원인 象(elephants, 馬(horses), 車(chariot), 步卒(foot-soldiers)의 네 가지니,
이는 결국 코키리 부대 · 기마부대 · 병거부대 · 보졸부대로 이루어진 당시의 전군(全軍)을
뜻한다.
인도(印度, India)를 기원지로 하는 차투랑가는 서쪽으로 6세기 경(A.D. 500년경)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 지역)을 거쳤는데, 지금도 인도지역에서 행해지고 있고, 이란에서는 ‘사트란지
(charanj) 란 이름으로 행해 졌었다. 그러던 것이 7세기경A.D. 600년경) 페르시아를 정복한
아라비아(Arabia)에 들어갔고, 이것이 다시 스페인(Spain), 이탈리아(Italy), 터키(Tukey) 등
의 지역을 거쳐 유럽(Europe) 전역에 널리 퍼지고 오늘날 미주(美洲, America)에서도 널리
행해지는 체스(chess, 서양장기)가 되었다. 체스란 페르시아어로 왕(王)을 뜻하는 샤(shah)
에서 온 말이다.
한편, 동쪽으로는 미얀마(Myanmar, 종전의 Burma)를 거쳐, 중국(China)으로 들어가서 오늘날 상기(象棋)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한국 장기(將棋)가 되었으며, 일본(Japan)에서는 쇼우기(將棋, しょぅぎ)로 불리는 일본 장기가 되었다.
장기는 각기 그 나라의 풍속이나 민족성 등에 따라 각각 특이한 기물과 대국법이 생겼다고
보는데, 서양에서는 체스로 통일되어 있으나. 동양에서는 나라마다 특성이 다른 장기가 발전되었다.
장기의 유래
장기가 만들어진 유래는 대략 3가지로 알려져 있다.
첫째, 당시의 불교도(佛敎徒), 즉 승려들이 수도생활의 하나로 마음을 다스리는 평정심을
일깨우고, 수도하는 시간외에 잠시라도 세속에 흐르기 쉬운 잡념을 떨어 버리고, 쉬는 겸
해서 장기를 발명하였다는 설이있다.
둘째, 인도의 한 왕이 현인에게 아주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 다음과 같은 특성을 살리라고 명했다.
①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하고,
② 주의를 집중할 수 있게 하며,
③ 선견과 지혜를 필요로 하며,
④ 찬스를 포착하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우며,
⑤ 재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 다섯가지의 단서를 붙인 왕의 명을 받은 현인은(바라문의 고승) 몇날 며칠을 연구한
끝에 전쟁을 모델로 만들어 이것을 왕에게 바치니 왕이 크게 기뻐하며 신전에 보존토록 하였다는 설이 있다.
셋째, 버마의 한 왕비가 전쟁을 좋아해서 전쟁터에만 나가 있는 왕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가상 전쟁놀이인 장기를 고안하여 왕과 함께 장기를 즐기게 되어 전쟁을 중지시키고 사랑을
되찾았다는 설이 있다.
한국장기의 역사
우리나라 장기에 관한 문헌으로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金富軾)이 고구려·백제·신라 등이 정립(鼎立)했던 삼국시대의 역사를 적은 책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장기에 관한 기록을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고, 어떤 경로로 전래되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중의「열전(列傳)」도미편(都彌遍)을 보면 백제의 제4대 개루왕(盖婁王
: 재위 A.D. 128-165)은 도미(都彌)라는 백성의 아내가 아름다운데다 절개마저 있다고 듣고는, 밤에 도미가 없을 때 그녀를 찾아가서, “내 너의 아름다움을 듣고 좋아한지 오래인데 도미와 내기장기를 두어 이겼으므로 너를 얻게 되었다. (我久聞彌好 與都彌博得之)” 라
고 나오고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百濟本紀』개로왕편을 보면 백제의 제21
대 개로왕(盖鹵王) : 재위 A.D. 455-474)과 중 도림(道林)이 바둑을 둔 얘기 가운데, 개로왕이 장기와 바둑을 즐겼다.(時百濟王近蓋婁好博奕)는 말이 있다.
보통 옛기록을 보면 장기는 박(薄)과 기(棋)를 썻으며, 바둑은 한자로 혁(奕)과 기(碁)를 써
서 바둑과 구분하였다. 이는 말을 가지고 노는 놀이는 같은데, 장기는 나무이고 바둑은 돌
이기 때문에 그렇게 구분한 것이다. 또한 장기는 상희(象戱), 상기(象棋), 상혁(象奕)으로도
쓰여졌다.
『고려사(高麗史)』권 127 강조전(康兆傳)에 고려 방어군의 강조(康兆)가 거란군이 침입해
왔을 때 통주성의 사령부에서 놓았다는 기는 장기(棋)로 장기를 두었음을 알수 있으며,
『고려사(高麗史)』권 71 속악조(俗樂條) 예성강곡(禮成江曲)에 장기 잘두는
당나라 상인 하두강(賀頭綱)이 예성강(禮成江)에 왔다가 벽란도(碧瀾渡)의 주인 주막 여주인
에게 반하였다. 그는 여인을 차지할 목적으로 주인에게 접근하여 내기 장기를 두었다. 일부
러 져서 상대의 자신감을 북돋운 다음, 마지막 한판에 모든 것을 걸자고 꾀었다. 장기에 진
주인은 아내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여인을 태운 배는 바다에서 한치도 못 나가고
그 자리에서 맴돌았다. 하두강은 결국 그네를 벽란도에 다시 내려놓은 뒤에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예성강곡에 그네가 울며 남편을 찾는 애처로운 정경이 담겨있다.
(昔有唐商賀頭綱善棋嘗至)
조선시대 서거정(徐居正, 형조판서 1420~1488)이 쓴
<筆苑雜記>내용은 이러하다.
○ 재상(宰相)에 마승(馬勝)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고, 관원 중에 차유(車有)란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다. 문안공(文安公) 이석형(李石亨, 첨지중부사1415~1477)과 문경공(文敬公) 김예몽(金禮蒙, 공조판서 1406~1469)이 한 동네에 살았는데, 하루는 마주앉아 장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중추부사(中樞府事) 송처관(宋處寬 중추부사 1410~1477)과 뒤에 도착하여 보니 장기판이 이미 이내 종반전에 접어들었다. 내가 보니 이공은 말[馬]둘이 있어 힘이 강하고, 김공은 차(車) 하나가 있으나 세가 약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마승(馬勝, 말이 우세하다)하지 않겠느냐.” 하니, 김공이 척 받아 말하기를, “나는 차유(車有 차가 있다)가 아니냐.” 하여, 서로 크게 웃었다. 권2
또한, 《세조실록》에 상희라는 이름 아래 장기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 되었다.
신숙주와 노사신 등이 임금의 앞에서 상희(象戱)를 했는데 신숙주가 이기지 못하니, 임금이 웃으면서 신숙주에게 이르기를,“노사신은 상희(象戱)에서 항상 경(卿)보다 못하였는데, 지금은 어찌 이와 같으냐? 경(卿)이 내일 재상(宰相)을 청하여 집에서 잔치를 베풀도록 하라.”
하고는, 인하여 술과 음악을 하사(下賜)하고, 노사신에게도 활과 금낭(錦囊)을 하사(下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叔舟思愼等 於上前象戱 叔舟不勝 上 笑謂叔舟曰 思愼象戱 常劣於卿 今何若是 卿 明日請宰相 設宴于第 因賜酒樂 賜思愼弓及錦囊 [세조실록 권제40, 8장 앞쪽, 세조 12년 11월 29일(정묘)]
- 세조 13년 정해-
후원(後苑)에 나아가서 매사냥을 구경하였다. 고령군 신숙주와 영의정 한명회ㆍ좌의정
심회ㆍ능성군 구치관ㆍ연성군ㆍ박원형ㆍ호조 판서 노사신과 승지 등이 입시(入侍)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내구마(內廐馬) 3필을 내어 신숙주 등으로 하여금 무리를 나누어
장기[將棋]를 두게 하여 내기하는데 붙였는데, 한명회와 심회ㆍ노사신이 이겼으므로
각각 말 1필씩을 내려 주었다.【원전】 8 집 63 면
1560년 중종대의 문신 우의정 심수경(1516~1599)의 견한잡록을 보면 <將棋用車包馬象士卒을 以木磨造 而刻字塡彩> 장기는 車, 包, 馬, 象, 士 卒을 나무로 깍아 만들어 글자를 새기고, 채색을 칠하여 쓴다. 라고 기록이 있으며,
장유(張維 1597~1638 이조판서)의 계곡집(溪谷集) 계곡선생집 제3권 잡저(雜著)장기 두는
법으로,
象戱志에서 장기의 정의, 장기판의 길, 기물의 기능(역할), 기물의 위치, 기물의 행마, 승부
와 빅 등 장기 이론이 상당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장기(將棋)는 대국(對局)하는 놀이로서 전쟁 상황을 본뜬 것이다. 장기판의 모양을 보면, 동
서(東西)로 아홉 개의 길이 나 있고, 남북(南北)으로 열 개의 길이 나 있으며, 남쪽과 북쪽
가에 9궁(宮)이 그려져 있는데 이곳은 대각선으로 통하면서 중앙으로 집중되고 있으니 바로
장(將)이 있는 곳이다.
장기짝은 각각 16개씩이다. 장(將)이 1개이니 장군이요, 사(士)가 2개이니 모사(謀士)요, 차
(車)가 2개이니 전차요, 포(包)가 2개이니 대포요, 마(馬)가 2개이니 기병(騎兵)이요, 상(象)
이 2개이니 전투용 코끼리요, 졸(卒)이 5개이니 보병(步兵)이다.
將은 9궁의 중앙에 있고 士는 그 뒤편의 좌우에 있고, 象은 士의 좌우에 있고, 馬는 象의
좌우에 있는데, 象과 馬는 서로 위치를 바꿔도 된다. 車는 馬의 좌우에 있고, 包는 車의 앞
쪽 날일자(日字) 변에 있고, 卒은 包의 앞 줄에 배열하는데 각자 한 칸[間]씩 떼어 놓음으로써 판짜기가 끝난다.
將은 한 칸씩 가는데, 전(前)ㆍ후(後)ㆍ좌(左)ㆍ우(右)에 구애를 받지 않으나, 9궁(宮)을 벗어
나지는 못한다. 士의 행마도 장과 같다. 車는 직선으로 가는데, 길거나 짧거나 가로나 세로나 전진이나 후퇴나 모두 구애를 받지 않는다. 包의 행마도 車와 같으나 반드시 타고 넘어
갈 것이 있어야 하는데, 오직 包와 包는 서로 넘지 못하고 또 잡아 먹지도 못한다. 馬는 날
일자 행마를 하고, 象은 쓸 용(用)자 행마를 하니, 세로로 3줄, 가로로 2줄을 간다. 그러나
馬의 앞이 가로막혀 있고, 象의 앞이나 날일자 변의 칸이 가로막혀 있을 경우에는 모두 행마가 불가능하다. 卒은 한 칸씩 가는데 좌우로는 갈 수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상대방의 장기짝이 나의 행마하는 위치에 놓여 있을 경우 잡아 먹고 싶으면 잡아 먹는다. 將을 먼저 잡는 쪽이 승리하고, 서로 이길 수 없으면 비긴다. 그리고 將과 將이 서로 맞선 상황에서 將으로 將을 부르는 것은 비기자고 청하는 것이다. 이것이 장기놀이의 대략적인 내용인데, 얼마나 권도(權道)와 정도(正道)를 발휘해서 두느냐는 대국자에게 달려 있다고 하겠다.
장기의 명수(名手)로는《식소록》에 전하는 금강산 백전암의 지암대사가 있고 《어우야담》에 소개된 종실 서천령이 특히 유명하여 서천령 수법이라는 장기의 묘법을 남겼다고 한다.
조선조 때 왕족이나 선비들이 장기를 즐겼음은 야담류에서도 주로 찾을 수 있고, 서민들이
장기를 즐겼음은 그들이 남긴 장기 민요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장기는 우리 조상들의 민속오락으로 사랑 받으면서 전해 내려온 것으로, 우리 선인들은 장기를 통해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흐뭇한 멋과 풍류를 찾으며 정서
함양을 꾀했다.
대한장기협회의 역사
대한장기협회는 1956년도에 윤응식씨(서울)가 주축이 되어 조선팔도 고수들(8명)이 모여
한국기도원이란 이름의 장기협회를 임의단체로 발족하고, 초대 회장에 현태호 한양대 교수가 역임하였으며, 이듬해 1957년에 손도심 국회의원이 2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서울신문사에서 국수전 및 프로 입단대회를 최초로 개최한 것이 효시가 된다.
한국의 장기 초대 국수에는 부산고수 안성흥(당시 4단)이 예상을 뒤엎고 임재민 5단을 누르고 초대국수가 되었다. 3대 임재민, 4대 이정석 회장 시절인 1967년에 한국장기원으로 개명을 하였고, 1973년에 다시 한국장기협회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5대 손도심, 6대 정성철,
7대 권용필, 8대 백용운, 9대 윤성호, 10대 김천석, 11대 류규상 회장을 끝으로 11대에 걸쳐 30년동안 임의단체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86년 6월 23일 한국장기협회가 정부로
부터 공인단체(사단법인)로 인정받아 초대 회장에 류규상씨가 취임, 제2대 회장에 이일훈 9
단이 취임하여 8년 동안 단체를 이끌어 오다가 1993년 8월 법인체가 해산되어 다시 임의
단체가 되었다.
이런 까닭으로, 협회는 약 5년간 양분화 체제로 유지되었다. 1994년 김응술 9단이 주축이
되어 대한장기협회를 창설 문화체육부로부터 사단법인으로 허가 받아 출발하였으며 1개월
뒤 최사정씨의 민속장기협회가 뒤이어 법인체 허가를 받음으로서, 장기협회는 2개의 단체로
양립하게 되었다. 이후 5년만인 1999년 5월, 양 단체 대표(최사정, 김응술)의 합의하에 두
단체를 합친 새로운 유일 단체인 (사)대한장기협회로 1999년 7월 새롭게 출발하였으며. 초대 회장에는 민속장기협회 회장이였던 최사정 회장이 취임하였고, 그 이후 2015년 5월 6대
김승래 회장이 취임하여 현재 협회를 이끌고 있다.
한국장기는 충효를 기본으로 삼아 일국의 흥망과 성쇠를 논하고, 더불어 한판의 장기를 통하여 삶의 지혜와 덕목을 두루 성찰할 수 있는 최상의 두뇌스포츠로,
우리의 선조들께서 후손의 앞날에 고귀한 이상과 지혜를 함양하기 위해 다른 나라 장기와 차별된 접전중에서도 각별하게 빅장군의 묘수를 남기는 등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유례없는 위트와 낭만을 곁들인 자부심 넘치는 민족정신문화이다.
선조들의 각고속에 남긴 장기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고귀한 이상과 지혜, 고유의 민족성,
처세 철학 등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속에 빛나는 두뇌스포츠이자 자긍심 높은 우리의 소중
한 정신의 전통문화임을 다시한번 일깨우며,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장기를 흥겨운 민족성과 역사성을 담은 정신문화로 계승, 발전시키며, 우리 민족의 예와 정신이 깃들어 있는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精神의 棋道로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다.



